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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자사

한국 현대 도예가 5인 소개

한국 도자기의 맥은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이후 이천, 여주, 광주 등 경기도 일대는 도자기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였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뛰어난 도예가들이 등장하여 한국 도자기의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현대 도예가 5인을 선정하여 그들의 작품 세계와 도자기 문화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유근형 – 이천 현대 도자기의 대가

유근형(1935~2013)은 이천을 대표하는 현대 도예가로,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작품 세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초창기에는 조선 백자의 전통 기법을 충실히 계승하려 노력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유근형은 전통 백자의 단순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에 현대적 조형성을 결합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백자는 고전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자유로운 곡선과 미묘한 색채 변화를 통해 새로운 미감을 창조하였다.

유근형은 이천 지역의 도자 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도자 장인 양성에 힘쓰며 후진을 지도하였고, 지역 도예촌 설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유근형의 노력은 이천이 오늘날 세계적인 도자기 도시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2. 신정희 – 여성 도예가로서의 독자적 세계

신정희(1952~)는 경기도 이천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대표적인 여성 도예가이다. 그는 전통 청자와 백자의 기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몰두하였다. 신정희는 특히 도자기의 표면에 섬세한 문양과 질감을 입히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그의 작품은 부드럽고 따뜻한 색조와 유려한 형태를 지니며,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신정희는 또한 전통 도자기의 생활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작품을 통해 도자기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될 수 있는 공예품임을 강조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전통적 형식에 현대적 감성을 접목한 다양한 생활 도자기를 제작하였다. 신정희의 작업은 한국 현대 도자기에 여성적 감성과 실용미를 새롭게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3. 권순철 – 전통 가마 복원과 생명력 부여

권순철(1949~)은 이천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전통 가마의 복원과 이를 활용한 도자기 제작에 몰두해온 도예가이다. 그는 현대식 가마가 일반화된 시대에도 옛 방식을 고수하며, 망댕이 가마를 직접 짓고 전통적인 소성과정을 재현하였다. 권순철은 "흙과 불과 바람이 함께 어우러질 때 진짜 도자기가 태어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였다.

권순철의 작품은 자연스러운 유약 흐름과 불에 의한 우연적 색변화를 특징으로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의 힘에 자신을 맡기는 태도를 보인다. 이 덕분에 그의 도자기는 각기 다른 표정과 생명력을 지니며,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권순철은 단순한 작품 제작을 넘어 전통 도자기 제작 방식의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앞장섰다.

4. 임항택 – 한국 도자기의 세계화 선구자

한국 현대 도예가 임항택
임항택 작가(출처:SBS 뉴스 동영상 캡쳐)

임항택(1942~)은 이천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한 도예가이다. 그는 조선백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국제 전시회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임항택은 ‘백자’라는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인 조형미로 승화시키면서도, 작품의 근간에는 늘 조선적 미의식을 담았다. 그는 특히 진사기법 연구에 매진하였다. 진사는 산화동이다. 진사 백자는 백자 위에 산화동으로 무늬를 그리고 환원소성으로 굽는 백자이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어 한국 백자의 품격과 우아함을 세계에 알렸다. 특히, 임항택은 대형 백자 항아리를 제작하는 데 뛰어난 기술을 보였으며, 이는 전통 조선 항아리의 장중한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사례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국내외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오늘날 한국 현대 도자기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5. 김종훈 – 실험성과 전통의 조화

김종훈(1963~)은 이천 도예촌을 거점으로 전통과 실험을 결합한 독특한 작업을 전개해온 도예가이다. 그는 분청사기의 자유로운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과감히 실험하였다. 김종훈의 작품은 전통적인 형태를 따르되, 표면 처리나 유약 사용에 있어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여 관람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는 또한 도자기와 설치미술을 결합한 대형 프로젝트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도자기를 단순한 공예품의 범주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김종훈은 끊임없는 실험정신 속에서도 한국 도자기의 뿌리를 잊지 않고, 그 본질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마무리

이천과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현대 도예가들은 단순히 과거의 전통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고 확장해왔다. 이들은 한국 도자기의 역사와 미학을 새롭게 정의하고, 세계 속에 한국 도자기의 가치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들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미래 도자기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앞으로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국 도자기의 세계적 위상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해본다.